Parallel Universes

I. Butterfly Effect

대체역사소설alternative history이라는 장르가 있다.
알려진 역사의 다른 갈래를 가정한다는 점에서 넓게는 판타지 문학의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갈래 역사의 근간이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하늘에 2개의 달이 떠 있고 불뿜는 용이랑 친구 먹는 류의 판타지랑은 산출물이 꽤 다르다.

우연히 지나면서라도 읽어본 것들이 필립 K. 딕의『높은 성의 사나이』와 무라카미 류의『5분후의 세계』였는데, 묘하게도 양쪽 모두에서 역사의 divergence point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높은 성의 사나이』는 연합군이 2차대전에 패배하는 세계에서의 미국을,『5분후의 세계』는 원폭투하 후 항복 없이 게릴라전을 수행하는 일본을 가정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건 우리나라 최초의 대체역사로 알려진 복거일의『비명을 찾아서』 역시 2차 세계 대전에서 미국에 협력함으로써 일본이 전후에도 조선을 계속 식민통치하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거다.

소설이 아닌 물리학에서 대체역사는 대체적 역사 가설alternative histories hypothesis이라는 용어로 스티븐 호킹의『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에서 시간여행의 역설을 해결하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제시된다. 가설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인 역사가 물리학에서 논의되는 것은 시간여행의 논리적 모순을 제거해 보려는 노력에서 시작한다.

영화 나비효과에서 정해진 단 하나의 미래는 과거의 선택에 따라 결정되고, 에반은 영화의 주인공답게 자신이 존재했던 모든 과거와 미래를 기억한다. 나비효과에서와 같이 고정된 과거에 개입하여 다른 미래를 만들어내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논리적 모순에 부닥치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몇가지 역설들은 이미 고전이다. 그 중 유명한 호킹의 예는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고조할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을 가정하는데, 이 경우 고조할아버지를 죽인 자신은 존재하면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논리적 모순에 이르게 된다.

# 에릭 브레스와 J. 마키에 그러버의 나비효과는 주인공 에반이 과거 결정적 순간으로 돌아가 선택을 달리함으로써 원하는 현재를 이루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물론 인과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아서 과거를 바꿀수록 현재는 더욱 예상치 못한 파국으로 치닫는데, 결국 에반은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자신이 태어나기 전 시공으로 돌아가 탯줄을 목에 감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Director's cut)

언급한 것처럼 과거로의 시간여행의 모순을 제거하는 노력의 하나로 대체적 역사 가설이 제시되는데, 역사의 대체 이전에 시간여행이라는 직관적이지 않은 상황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 걸까.

II. Space, Time and Reality

뉴튼은『프린키피아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에서 완전히 정지한 절대공간과 외부 기준에 상관없이 항상 동일한 속도로 흐르는 절대량으로서의 시간을 가정했다. 그러나 절대불변의 실체로서 시간과 공간을 가정한 고전역학은, '만물에 대해 일정한' 빛의 속도를 놓치지 않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일부 폐기 및 흡수된다. 즉, 뉴튼 역학에서 각각 절대적이던 시간과 공간은 특수상대성에서 시공간spacetime으로 통합되어 시공간 자체가 새로운 절대적인 개념이 되고, 자연히 시간과 공간 각각은 관찰자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물리량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이제 도도히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흐르던 시간의 절대성이 무너지고, 시간은 공간과 하나로 뭉쳐졌다. 남은 건 고전물리학의 공간 여행을 대체할 시공간 여행.
# 질량이 시공간을 왜곡시키는 것 자체가 바로 중력이므로, 시공간 왜곡은 그 자체가 중력의 존재 이유가 된다.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이 왜곡되는 것이 중력장을 설명한다면, 공간에 차원을 하나 추가한 칼루자의 5차원 시공간 왜곡은 전자기장를 설명해 낸다. 오, 이런.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중력과 전자기력이 통합되는 순간.

아인슈타인 자신은 시간여행에 관한 저술을 남기지 않았지만, 쿠르트 괴델은 일반상대성이론이 허용하는 새로운 시공에서 물리법칙이 시간여행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일반상대성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허용하는 해를 가진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방향마저도 상대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일 거다.
이론상 시간을 여행하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다. 그 중 가장 우아해 보이는 건 킵 쏜의 웜홀wormhole 타임머신이고, 가장 기발하지만 실현가능성 없는 건『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에 나오는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를 이용한 방법인 것 같다.(사실 개인적으로 후자는 유머에 가깝다고 본다.) 웜홀 타임머신은 실제 영화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 하는 시공간 여행 방법인데, 칼 세이건이 『컨택트Contact』를 집필하고 있을 때 쏜에게 소설에 나오는 웜홀을 이용한 여행의 물리학적 타당성에 대해 의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웜홀은 공간에 나 있는 가상의 터널이다. 다만, 양쪽 끝만 기존의 공간에 연결되어 있고 터널은 다른 공간에 속해 있기 때문에 그림으로 나타내는 건 무리가 있으나  일반적인 물리 교과서는 보통 위와 같이 표현한다. 그림 출처는 Wikipedia.

일반상대성이 허용하는 웜홀의 수학적 특성을 물리적으로 해석하면, 웜홀이 공간을 연결할 뿐 아니라 시간을 뛰어넘는 지름길의 성질을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년중앙이 설명하던 공간을 접는 방식의 우주여행(워프)은 사실상 시공간 상의 지름길을 이용하는 웜홀 타임머신이었던 거다. 이제, 상상의 시간여행은 이론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III. Parallel Universes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가능해진 경우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호킹은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하나는 일관된 역사 접근consistent histories approach으로 물리법칙의 해가 과거 역사를 뒤흔들만큼의 자유의지를 제공하지 않는 것을 가정한다. 즉, 고조할아버지를 살해하는 것과 같은 모순을 야기하는 과거여행이 어떠한 이유에서 가능하지 않거나, 과거로 거슬러 간다해도 기록된 역사를 뒤바꿀 수는 없는 제한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설이다.
다른 하나가 바로 대체적 역사 가설인데, 시간여행객들이 과거로 들어가는 순간 우주는 또다른 역사로 진입하는 것을 가정한다. 즉, 시간여행자가 과거로 들어갈 때마다 우주가 똑같은 두 개로 나누어져 각각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게 된다는 가설이다. 이 가설에 의하면 슬프게도 오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를 어찌해 보려는 헐리우드의 낡은 수법들은 죄다 무용지물이다.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 경계를 뛰어넘어 양자역학으로 넘어오면 다중우주해석many worlds interpretation을 만날 수 있다. 휴 에버렛은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에 의한 파동함수wavefunction가 관측에 의해 붕괴되는 것을 부정하고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진행되어 나간다고 주장한다. 내가 이 이론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든 발생 가능한 사건이 진행하는 무수한 시공간의 동시 존재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굳이 과거로의 여행을 끼워넣지 않아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모든' 우주parallel universes가 동시에 존재한다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다. 물론, 머리는 어지럽지만...

IV. The Road not Taken

그러나 어지러운 머리로 굳이 관측measurment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냉정해지기만 하면 평행우주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을리 없다는 것도 곧 쉽게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관찰자가 관찰할 수 없는 현실이 의미가 없는건 너무나도 당연한데, 그럼에도 가끔 나는 평행우주 어딘가에 있을 아쉬움도 후회도 모르는 또다른 나를 상상하는 걸까.
프로스트가 뒤돌아 보고 질척거리던, 가지 않은 길. 내게는 능력이 모자라고 게을러 '가지 못한 길'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가끔 나는 양자적 개연성에 의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는 또다른 나를, 아무 이유도 의미도 없이 그저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다.

by sugargum | 2006/09/04 23:10 | 1. DESTINY | 트랙백 | 덧글(3)

F-35 Lightning II

'군사 무기'로서 전투기에 대한 매력을 느껴본 적은 없지만, 따지고 보면 멋지거나 이쁜 건 항상 위험한 것들이었던 것 같다. 그 위험한 것들 중에서도 기술과 디자인이 동시에 극한을 달리고, 하늘을 날겠다는 인류의 오랜 염원이 더해진 전투기야말로 존재 자체가 빛나는 인간의 발명품 중에서도 가장 사치스런 '욕망의 대상'일 거다. 게다가 이건 돈 있다고 아무나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래리 앨리슨 정도 돼야 해리어를 가질 수 있고 미해군 파일럿이 아니고서는 미국 대통령이라야 항모에 착륙하는 쇼라도 할 수 있으니.. (한숨)

JSF 사업 이전, F-15를 대체할 기체를 개발하기 위한 미공군의 Advanced Tactical Fighter (ATF) 사업이 있었더랬다. (사실 더 기대를 했던 건, F-14를 대체하기 위한 NavyATF였는데 얘는 왜 흐지부지되었는지 모르겠다.)
당시 ATF Program에서는 정말 적응이 안 되는 뉴엣지(?) 디자인의 YF-22, YF-23이 경합을 벌이고 있었는데, 스텔스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저런 각 안 나오는 각밖에 안 나오는 디자인은 심지어 플라이트 시뮬레이션 게임 회사의 음모라고 나는 생각했다.
# 왼쪽이 YF-23, 오른쪽이 YF-22. YF-23의 엔진은 아래각도에서 보면 날개에 완전히 묻혀 있는데 레이더 신호 반사를 막기 위해서다. YF-22 역시 나름 Radical한 외모를 하고 있음에도 수직수평 꼬리 날개를 아예 합쳐버린 YF-23에 비하면 평범해 보일 정도다.

양쪽 시제기 모두 Afterburner 없이 음속을 넘나들고, Lockheed Martin/Boeing/General Dynamics의 YF-22에는 문제의 추력편향노즐이 도입되는 등 최신 기술이 한풀이하듯 동시다발 쏟아지는데 어찌 흥분되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인가... 어쨌거나, 그 때 대세와 달리 나는 YF-22쪽을 지지했더랬는데, YF-23의 제작사가 내가 기절하게 좋아하는 파이터 F-14 숫고양이의 Grumman을 합병한 Northrop과 그 이름도 믿음직한 McDonnell Douglas 컨소시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는 정말이지 편파적이지 않은 잣대로 아무 이유없이 YF-22를 응원하고 있었던 거다.

재미있는 건, 후에 F-22 Raptor가 된 YF-22 prototype의 닉네임이 지금은 F-35의 이름이 돼 버린 Lightning II였다는 사실. 참고로 공군내에서 공식 닉네임이 없던 YF-23은 지들끼리 Black Widow II로 불렀나본데 이것도 Lightning II처럼 2차대전 때의 파이터 이름에서 유래한 거다. 아리까리한 건 둘 중 하나가 Superstar로도 불렸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에는 그게 YF-23이고, 검색 결과로는 YF-22이란다.

이후 F-4 이후 첨으로 2000억달러 규모의 해군, 공군, 해병대의 Joint Strike Fighter 사업이 뜨는데 역시 살 떨리는 Winner takes all 게임.
일찌감치 탈락해 버린 Northrop/Grumman/BAE는 결국 F-35 양산에 곁다리로 참여하게 되지만, 결과적으로 fail한 Boeing은 관심을 완전 무인전투기로 돌려야 할 판이었으니 양쪽다 조낸 후달렸을 거라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YF-22 때는 Lockheed Martin의 아군이었던 Boeing이 McDonnell Douglas를 합병하고 먼저 완성된 X-32 prototype으로 유리한 싸움을 꽤 오랜 시간 지속했으나, 막판 수직착륙 시연 중 높은 온도의 배가가스가 엔진에 역유입되는 설계미스가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X-35에 패배.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더 결정적인 패인은 그 망할 놈의 외관.
# 주력 Lockheed Martin의 패밀리룩으로 F-22 Raptor의 동생쯤으로 보이는 X-35(오른쪽)에 비해, 초반 설계 이후 수평꼬리날개 자체가 없었던 X-32는 비호감 자체다. 개인적으로 저런 가오 안 사는 배불뚝이의 파일럿은 챙피해서 사기가 저하될 수밖에 없다고 믿는다.

결론적으로 X-35가 최후의 유인 파이터가 될 수 있었던 건 막판 150m 활주로에서 이륙, 음속을 돌파한 후 수직착륙을 하는 빅쇼의 효과와 더불어 퇴역할 F/A-18의 아름다운 실루엣에 그나마 근접한 것이 X-35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물론, 근거는 없다.

by sugargum | 2006/08/08 01:08 | 1. DESTINY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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